규칙, 목적 그 자체로서의 규칙

생각을 정리해 보며.. | 2010/07/31 22:20
Posted by 말 없는 수다쟁이 우드너
원래 월 마감글은 보고서 형식으로 각 규칙들에 대한 성과를 정리해 보고자 했는데, (물론 성과와 같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는 매우 피상적이고 결과에만 집착하는 꼴이 되고, 결국 내각 왜 규칙을 정하고 지켜나가려는지... 그 본질을 놓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정한 규칙에 대해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한 부분은 앞으로 별도로 각개전투 하는것으로 하고! 그보다는 그 달에 내게 가장 큰 이슈가 되었던 내용을 글로 정리해 보는게 더욱 의미있고, 또 앞으로도 더 가치있을것 같았다. 7월은 내게 예상 외로 많은 이슈가 생겼던 달이었다. 첫 시작은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에 따른 생활을 화두로 삼긴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SNS에 대한 이슈가 점점 커져갔고, 그리고 나의 사회성이나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7월을 마감하는 글에서는 첫 고민의 출발점이었던 정의(justice)와 이를 찾기 위해 나에게 약속한 바로 그 "규칙"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며 마감하고자 한다.

예전에도 어떤 상황에서든지 보편적 법칙에 의한 선택을 위해 내 나름대로의 (감성적 끌림에 기반으로한)규칙이 존재했었다. 다만 그 규칙이란 것이 일반적으로 내 감성적 또는 (사회로 부터 교육받은) 도덕적 행동을 옹호하거나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이러한 규칙들은 어느 누구나가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이성적으로 만들거나 다듬어 나가기도 하지만, 대부분 의식하지는 못하고 본능이나 감정적 또는 경험적 지식에 따라 무의식의 레벨에서 "반응"하는 경우가 더 많다. 나이가 어릴수록 그 구분은 어렵지 않게 확인 가능하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경계는 매우 모호해진다. 어쟀튼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과정에 이러한 "규칙"은 필연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분명한것 같다.

규칙은 선택을 위한 바로미터가 된다. 규칙이 없을 경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 이러한 규칙을 잘난 용어로 그 사람의 철학이나 가치관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냥 규칙이라고 표현하기로 한다. 내가 아직 가치관이나 철학을 논할만큼 생각이 깊지도 않고 성숙되지도 않았다. 더욱이 여기에서 이야기 하는 규칙은 내 생각엔 철학이나 가치관 중에서도 상당히 협소한 부분집합에 해당되리라 생각된다. 누군가의 규칙은 내가 그 사람을 정의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는 곧 내가 나를 만들어가기 위한 기준이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자아형성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규칙은 나를 이해하고 판단하고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자 상대방을 이해하고 판단하는데 있어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그리고 이 규칙은 앞서 이야기 한데로 누구나가 어떤 형태로든 다 가지고 있다.

누구나 규칙을 가지고 살지만 정말로 중요한건 어떤 규칙을 가지고 살아가는야 하는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아주 통상적인 선택에 대해서는 나와 같이 본능적 또는 감성적이거나 관습적인 즉, 사회로 부터 교육받은 도덕적 규칙이나 반복적 선택으로 인해 형성된 규칙에 따라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는다거나, 친구를 때리면 안된다거나,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께 먼저 인사를 드린다거나, 아무리 가지고 싶은것이 있어도 남의 것을 빼앗으면 안된다거나... 너무나도 당연하고, 그래서 굳이 이유를 알 필요가 없거나 이유가 있을 수 없는것들... 이러한 규칙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처음으로 소위 철학자가 되기 시작한다.

집착이 부족해서일까? 성질이 급해서일까? 나는 항상 그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기에만(엄격히 말해 그럴듯한 답을 만들어내기에만...) 급급했던게 아니었나 하는 반성을 요즘 하고 있다. 좀 더 파고 들었어야 했는데, 조금만 파고 들다 "그래 이것이야 말로 정언명법에 준하는... 목적 그자체로서의 정의야!"라며 규칙을 쉽게 정하곤 했다.[각주:1] 그 정의라는것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으며, 그리고 내가 정의(define)한 정의(justice)가 틀린것이 아닌 다양성에서 비롯된 내가 바라본 정의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나 스스로는 알고 있다. (의식 수준이든 무의식 수준이든) 그것이 본질이 아님을... 그렇게 나는 편리하게 대충 "정의"라는걸 정의하고 살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좀 더 진지하게 정의에 대한 고민을 하며 살아갈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궁극의 답을 찾게될 일은 없을 것이다. 설령 그 정의의 본질에 조금씩 가까워 질 수는 있을지언정 말이지... (만약 그 순간이 온다면 난 곧 예수가 되는것이야~ㅋ)
 
왜 갑자기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까? 정의는 규칙을 정하기 위해 그 기준이 되기 때문이라는 판단에서다.[각주:2]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 예는 정의(justice)라는 책에 나오는 한 예를 내가 내 맘대로 각색한 것이다.

나는 관광버스 운전기사다. 오늘 운행을 모두 마치고 차고지로 돌아가고 있었다. 언덕을 지나 가파르지는 않지만 긴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갑자기 브레이크가 듣질 않는다. 핸들도 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데 앞 교차로를 건너 어린 학생 9명이 길을 건너려 한다. 이대로 가다간 저 9명 학생 모두를 칠것만 같다. 그렇다고 핸들을 꺽자니 오른쪽으로는 보행중인 젊은 여성 두명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유모차를 몰고 있는 나이든 할머니 한명이 보인다. 이들 중 아무래도 젊은 여성 두명 보다는 그나마 인생을 좀 더 살아오신 할머니 한명을 선택하는게 옳을것만 같다. 그런데 유모차가 걸린다. 유모차에 얼마전 세상을 본 아기가 타고 있다면... 다급한 이 찬라의 순간 난 어쩔수 없이 마지막 힘을 다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꺽었다. 결국 젊은 여성 2명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버스는 건물과 충돌해 심하게 일그러 졌지만 기적처럼 나는 큰 부상 없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운전면허가 없다! 조만간 취득할 예정이다.) 이 예에서 나는 오직 3가지 선택만 가능하다고 일반화 시켜보자. 사고가 발생하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누가 얼만큼 사고를 당하느냐의 문제만 남는다. 이 경우 나는 1차적으로 9명의 어린학생보다 상대적으로 수가 적고 학생들보다 인생을 더 살았다고 여겨지는 젊은 여성들이나 나이든 할머니를 선택한다. 또 이들 중 젊은 여성2명에 비해 나이든 할머니가 더 많은 인생을 살기는 했으나, 유모차에 아기가 타고 있을 확율이 높다는 판단에서 결국 나는 젊은 여성 즉, 오른쪽으로 핸들을 꺽게 되었다. 이 사고에서 대중들은 나에게 죄를 묻기란 쉽지 않다. "내가 저런 경우에 처했다면..." 이런 가정을 해보면 그 선택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결론적으로 나는 젊은 여성 2명을 내 선택에 의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예를 보자.

어느날 나는 운전을 하다 교차로에서 신호를 받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경사로로 된 길 저편 위에서 꼬삐풀린 망아지마냥 질주하는 대형버스 한대를 목격했다. 이 버스에는 내 앞에 있는 교차로로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내려오고 있었다. 그 버스 안에 아무도 없는걸 봐서 경사로에 주차되어 있던 버스의 브레이크가 풀려 가속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버스가 지나게될 길 위를 어린이들 9명이 건널목을 따라 통행 중이었다. 내가 그냥 있을 경우 대형참사로 이어질게 불보듯 뻔하다. 그런데 내 차 바로 앞에 소형 버스 한대가 신호를 기다리며 있었다. 이 소형 버스는 운전기사 한명만이 있었다. 이 차를 내 차로 밀어 교차로를 막게되면 비록 버스 운전기사 1명은 죽겠지만 무고한 9명의 어린이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 내 차로 내가 뛰어들어 질주하는 대형버스를 막기위한 시도를 해볼순 있겠지만 내 차가 워낙 작은 소형 전기차라 참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9명의 어린이를 살리기 위해 내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그 소형버스를 교차로로 밀어넣어 운전기사 한명의 목숨으로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이 경우는 어떠한가? 분명 나는 앞서 든 예에서와 같이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한것이다. 오히려 이번엔 앞에 있던 소형 버스의 운전기사 1명으로 이전 2명의 여성에 비해 희생자도 줄었다. (게다가 이 소형버스 운전기사의 나이도 60이 훌쩍넘은 할아버지다라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이런 사고가 정말 생긴다면 대중들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내게 죄를 묻고자 할 것이다. 과연 나의 행동은 정당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왜 정당하지 못한것일까? 혹여 대중들이 비이성적 사고로 내게 실수를 하는건 아닐까?

물론 두번째 예의 경우 나 스스로 정당한 행위였다고 주장하기란 쉽지 않은 문제다. 비록 결과적으로는 많은 희생을 막기는 했지만서도 말이다. 게다가 희생자 수도 1명으로 첫번재 예에 비해 적다. 두번재 예에서 그러한 정당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내 앞에 있던 소형버스의 운전기사의 생명을 그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내 선택에 의해 강요당했다는 점이 좀 걸릴것이다. 그러나 첫번째 예에서 죽임을 당한 두명의 여성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 또한 나의 선택에 의해 죽임을 당한건 마찬가지다.

또 다른 경우를 만들어 보자. 이번엔 두번째 예를 좀더 확장해 보는 것이다.
나는 억울하다. 나는 분명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살인자로 몰아세우고 있다. 그런데 며칠전 아침 뉴스에서 내가 밀어넣었던 그 소형버스 운전기사가 어린 아이들을 해할 의도로 그 대형버스의 브레이크를 파손했을 것이란 정황이 포착되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내게 "힘을 내라", "그 상황에서 당신이 얼마나 힘든 결정을 했는지 이해한다.", "당신은 분명 최선의 정의를 선택하신 분이다." 등 많은 편지를 보내오고 있다. 심지어 "분명히 진실은 밝혀질 것이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봐라"는 등... 어쨌튼 나의 억울함을 이해해 주니 좋기는 하지만, 갑자기 뒤바낀 사람들의 반응에 당황스럽기도 하다.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다.

이 두번째 예의 확장판은 또 다른 화두를 던진다. 내 행동 자체에 대한 평가가 아닌 결과에 대해 평가하고 있다. 첫번째와 두번째 예에서는 결과가 어찌되었튼 내 행동 자체에 대해 평가를 하려했다면, 세번째 예에서는 결과에 대해 평가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롭지 못하다던 나의 행동이 사망한 소형버스 운전기사의 악의적인 목적에 대한 예측이 나오면서 정의로운 행동으로 변해가고 있다. 아직 조사가 끝난 시점도 아닌데 말이다. 나 스스로 정의로운 행동을 한다고 했지만 정의롭지 못했다 하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이유로 인해 다시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내 입장에서 이것을 과연 정의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심판

정의로운 심판이었다 해도 현실에서는 이해관계로 인해 쉽게 받아들여지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예는 정의에 대한 고민을 위해 그 상황을 매우 일반화 시킨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와 유사한 예는 우리가 언론을 통해 연예인들의 가십거리를 뒤져내는 과정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 가능하며, 심지어 일반인들도 이러한 상황에 처해 가슴앓이를 경험하거나 또는 인정받지 못하는 정의를 홀로 외치기도 한다. 내가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도 전에 세상은 그 모범답안을 정의해 놓고 그리고 그 답을 강요하기도 한다. 설령 내 답이 올바른 정의가 아니라 할지언정, 그건 분명 정의롭지 못하다. 내가 옳은 정의를 이야기 하지 못했다 해서, 세상이 제시한 답이 정의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해서 세상과 다른 나의 답이 정의가 될 수도 없다.

앞서 예로 들었던 3가지 경우에 대해 사람들은 각자 어떤 판단을 하게 될까? 혹시 위 3가지 경우에 대해 모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 법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은 내가 가진 규칙을 토대로 판단해 볼 때 (절대적인 정의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지언정) 최소한 자신의만 뚜렸단 규칙, 다시말해 가치관이나 철학을 가지고 있을것이라는데 무게를 더 둘것 같다. 나는 솔찍히 말해 여기에 보편적 규칙을 적용할 논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 세가지 예를 파악한 뒤에 논리를 만들어 끼워 맞추자면 얼마든지 만들어 내겠지만, 현실에서는 세번째 예에서와 같이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얽혀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관계에서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는 논리, 법칙... 규칙은 아직 내게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 정의를 갑자기 언급한 이유로 규칙를 만드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 정의를 이야기 하기 위해 3가지 예를 들어가며 장황하게 설명하려 한 이유는, 그 규칙이란것을 만들때 그냥 단순히 "뺑소니는 나쁜것이니 절대 뺑소니 치지 말자!"라는 멍청한 암기식 주입식 규칙 하나 만들자고 지금까지 힘들게 떠들어댄게 아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몰라도 좋다. 규칙 하나를 만들면서 "왜?"라는 질문에 답 할 수 있어야 하고(설령 그것이 완전치 않다 하더라도), 또 그 답에 대해 "왜?"라는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거슬러 가다 보면 그 존재 자체로 목적이 되는 마지막 답이 나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정의의 실체일 수 있다. (물론 더 많은 지혜가 쌓이다 보면 정의라 여겼던 답에서도 다시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리고 그 답을 찾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지금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요점이 아니다.) 그러한 반복적 훈련과 이를 통한 성취는 자연스럽게 내 자신에게 정의를 가르쳐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서야 그러한 규칙을 만들어 보려는 노력을 시도하고 있다.

오늘 진중권 교수님의 트위터에 올라온 글 하나를 인용해 본다.
쫄병들은 제대러 대답해야 할지 아니면 고참이 가르쳐준 대로 대답해야 할지, 당직사관과 옆으로 눈을 부라리는 고참 사이에서 점호때마다 고민해야 했지요.또 다른 하나는 군인정신. "군인정신이 뭐야?" "예, 군인정신은 제 정신이 아닙니다."

반칙

정의롭지 못한 행위는 아무리 그 논리가 그럴듯 해도 결국 설득력을 가지기는 힘들다.

이 군인은 참말로 용감하다. 의도된것이라면 사회가 요구하는 정의에 대해 상당히 유머러스하게 비꼰격이 아닐까 싶다. 이미 나도 어쩜 제정신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특히 과거 말장난에 경멸해 마지않던 내 모습을 뒤돌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정의가 뭐고, 규칙은 또 뭐냐? 그게 밥먹여 주디? 철학? 놀고 자빠졌네~ 그 고민 할 시간에 차라리 MSDN 뒤져보며 내공이나 쌓아라..." 이 사회는 정형화된 "모범시민"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는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런 "모범시민"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모법시민"의 모습을 하고 있고, 심지어 그런 모습을 갖추려 치장을 하기도 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설픈 논리에 용기가 부족한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에 더불어 내가 내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정의"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설령 정의를 내 안에 품고 있다 해도,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과연 그 정의는 살아 있는 정의인가? 죽은 정의인가?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정의를 (설령 아직 잘 다듬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들어내어 표출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표현은 곧 내가 가지고 있는 철학, 즉 정의를 바탕으로 현실에 실체화 하기 위한 구체적인 규칙들에서 부터 발현되는게 아니겠는가 하는게 내 생각이다. 어떤 보편화된 신념 하나로 정치적 화두를 만들어 상대 진영과 대판 설전을 벌이는 것만이 정의를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마사루

아무리 정답이 없고 보잘것 없는 문제라 해도 고민하고 탐미하는것 자체로 의미 있는 정의가 될 수 있다.

정의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이야기 하진 못하겠다. 사실 난 그저 평범한 소시민으로, 지나가다 괜히 경찰을 보면 아까 길에다 버린 담배 꽁초가 내심 맘에 걸려 발걸음을 재촉하는 그런 사람들 중 한명이다. 심지어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단어에서부터 내 온몸엔 왠지 모를 오글거림과 함께 "우끼시네~ 이 세상에 정의는 무슨..."이라며 비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고, 심지어 "정의는 이미 죽었다!"라며 염세주의적 사고도 뿌리깊게 박혀 있는 사람이다. 다만 가슴 한켠에 "언젠가는 정의가 이긴다!" "언젠간 정의가 이길껄~" 이라는 생각을 놓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하나의 세상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모두 제각각이다. 완전히 세상 말세에 곧 종말이 도래하리라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래도 우리는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 지금까지 비록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아 왔지만 앞으로는 그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며 너 나은 세상에서 더 행복하게 살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결국 냉혹한 현실을 정확히 인지하되, 그 속에서 누가 얼마나 많은 행복을 찾아내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것은 행복을 만드는게 아니다. 찾는 것이다. 이미 그 냉혹하다는 현실 속에서도 행복은 이미 무수히 존재한다. 단지 그것을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난 R=VD[각주:3] 철학을 신뢰할 수 밖에 없다. 

최소한... 내가 정하고자 하는 규칙은 정의를 기반하고 있다.(그러고 싶다!) 정의는 나 개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심지어 이 우주 만물에 대해 차별없이 공평하면서도 평등하게 적용가능한... 보편적 법칙을 이야기 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어쩜 인간이 깨닳을 수 없는 영원한 과제일 수도 있다. 때문에 종교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인...[각주:4] 목적 그 자체로서의 규칙... 이것이 바로 정의는 아닐까? 진리는 항상 매우 가까운데 있다 하지 않았던가? 간혹 사람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이런얘길 자주 듣곤 한다. "어짜피 정답이란 없잖아요." 그렇다. 정답은 없을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없다고 할 수는 없다. 없을지도 모를는 답을 찾는 노력은 분명 계속 필요하고 그 자체로서 이미 정의일런지도 모른다.


 
  1. 사실 이렇게 쉽게 규칙을 정하는데는 매우 다양한 심리가 반영된다고 생각된다. 보통 사춘기때 우리는 "나는 왜 사는가?"따위의 어찌보면 매우 진부하지만 그러나 본질적인 고민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이러한 고민의 과정을 밟기 보다는 자신의 처지나 이해득실관계에 있서 자위나 이득이 되는 규칙을 먼저 정하고, 이 규칙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만들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논리는 비록 아주 정의롭지는 못하다 하더라도 최소한 악의적이지는 않은것임을 증명하는데 더 많은 애를 쓰게된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방식이 정신적 건강이나 심지어 재화축적을 위한 행위를 도울 수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의롭다고 할 수는 없을것이다. [본문으로]
  2. 정의(justice)라는 식상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를 대체할만한 딱히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이 용어를 사용한데는 두가지 이유가 더 있다. 첫째 "나 혼자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라고 보기엔 객관적이지 않고, "모두가 옳다고 생각되는 일"이 되어야 하는데 이 표현을 한마디로 정의(define)하면 정의(justice)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최근에 읽은 정의(justice)라는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본문으로]
  3. "생생하게(Vivid) 꿈꾸면(Dream) 이루어진다(Realization)"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근 내 마누라가 나의 글에 대해 댓글을 달면서 이 용어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댓글을 통해 나의 규칙 만들고 실천하기에 대한 논리가 완전히 괘변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마누라 눈에는 이미 나의 변화가 보이는 것일까? [본문으로]
  4. 정의(justice)라는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존재 그 자체가 목적이라고 한다. 즉 사람을 어떤 다른 무엇을 위한 목적이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그것은 부도덕한 것으로 정의롭지 못하다 이야기 하고 있다. 내가 이야기 하는 규칙도 마찬가지다. 규칙 그 자체로서 목적이어야 한다. 그 규칙이 어떠한 욕구의 목적이나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욕구이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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