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은 스마트한 사람이 사용하는 폰이다.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맨날 내 머릿속을 맴도는 말이다. 이 복잡한 심경을 빌미로 8월의 첫주를 완죤 홀라당 말아드시고 말았다. 규칙에 대한 미학을 곱씹어대면서, 대세가 되어가는 SNS의 위협에 짖눌려서, 그리고 내가 얼마나 보잘것 없고 든것 없는 무능력한... 마치 내가 루저의 좋은 예로 존재하고만 있는것 같아서...
이런 심정이 비단 최근에 나타난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이런 자괴감에 괴로워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었다. 과거에는 애써 감추고, 아닐꺼라 부정하고, 심지어 그 화살을 남에게 그리고 세상에 겨누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진짜 나 자신과 대화하고 싶고 나라는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해보고 싶다.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이번 슬럼프(?)는 미투데이와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촉발되었다. 이러한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를 사용하고자 했던건 온갖 미디어와 언론에서 이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을 보도해 되면서 나도 한번 "다시" 써볼까 하는... 가벼운 맘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들은 대부분 출범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한번씩 써보긴 했다. 그 당시 내가 느낌점이라면 한마디로 "나 혼자 댓글 놀이 하는거네!" 였다. 심지어 입력할 수 있는 글자 수도 140~150자 내외로 제한적이다. "이걸로 뭘 하겠다는 거지?"
사실 블로그라는 서비스가 우리나라에 유행을 예견하고 있을때도 내 눈엔 그냥 쥔장만 쓸수 있는 단순한 게시판이었다. 단지 외형만 좀 변형한것에 불과했다. 이 블로그가 오늘날 인터넷에 1인 미디어로써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내눈엔 단순히 주인장만 쓸 수 있는 변종 게시판 따위가 어떻게 이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는가 무척 신기했다. 현재는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당시에만 해도 홈페이지 빌더라는 것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만의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는 서비스가 많이 존재했다. 이런 홈페이지를 통해 내 글을 작성하고 소통할 수 있는데도 굳이 블로그라는 서비스를 만들어낸게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게다가 오로지 쥔장만 글을 쓸 수 있고 방문자는 그 글에 대해 댓글이나 방명록 정도만 쓸 수 있다는게 오히려 역으로 소통을 방해하는 권위주의적 시스템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RSS니 트랙백이니 하는건 이 블로그 시스템을 위한 악세사리쯤 여겨졌다. 근데... 이 악세사리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을줄이야.
최근에는 이와 유사한 서비스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난 최근 텀블러라는 서비스를 이용해 보고 있는데, 이 시스템은 블로그와 마이크로 블로그의 중간정도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블로그로 글을 쓰자니 부담스럽고, 마이크로 블로그를 사용하자니 제약이 심하고... 이런 생각이 든다면 텀블러는 꽤 흥미로운 서비스일테다. 심지어 이러한 서비스들은 이제 서로 서비스들 끼리 소통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을 내 메신저를 통해 확인하고 심지어 메신저에 글을 남기면 자동으로 페이스북에 댓글로 등록된다. 트위터를 통해 감히 범접하기 힘들었던 높으신 분들이나 유명인사와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게 되었다. 왜 나는 블로그나 마이크로 블로그의 등장에 오늘의 이러한 가능성을 간파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들간의 유기적인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음을 왜 보지 못했을까?
이러한 서비스나 시스템을 단순히 어떤 특정 기술(예를 들어 RSS나 Ajax 등)이나 한때 유행처럼 붐을 일으켰다 지나갈 트렌드 정도로만 본다면 그 답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그랬다. 단순히 별것 아닌 기술 몇개 가지고 이리 저리 섞어 마치 엄청난 새로운것이 창조된것 마냥 떠들어대며 쇼를 하는구나 했다. 마치 내가 Ajax의 정체를 알고 난 뒤 이를 비아냥거렸듯이...1 하지만 사실은 그 정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피상적인 껍데기만 보고 판단했지 그 실체가 가지는 의미따윈 개나 줘 버렸던게다. 이 문제는 나 자신에게 매우 심각한 고민꺼리를 하나 더 안겨주고 있다. 마치 국어책을 읽기는 해도 그 내용에 대한 이해력과 더 나아가 비판력 따윈 배우지 못했던... 배우려 하지 않았던... 과거의 귀차니즘이 아주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의 나에게 단세포적 사고관을 형성하는 근간이 되어 버렸다.
과거에도 그러했겠지만... 특히 최근 이 모든 서비스의 중심엔 소통이라는 화두가 자리잡고 있다. 과거엔 온라인을 통한 소통이 오히려 그 기술의 한계로, 말만 그럴듯한 하나의 구호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제는 말 뿐이 아닌 실제 소통을 위한 도구로 충분히 활용되어지고 있다. 아니 오히려 이러한 서비스를 빼고는 소통을 논하기 힘들어졌을 정도다. 이러한 소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것 중 하나가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이야기하고 타인의 생각을 듣고 하는 일련의 행위들일테다. 하지만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건 하겠는데 (혹은 하는척 하거나) 타인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데는 매우 서툴다. 어색하다. 그나마 많이 가까워진 사람들이라면 혹은 꼭 해야할 자리라면 주저없이 내 이야기를 쏟아내곤 하지만... 굳이 나서서 내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는데는 무척 인색하다. 여기엔 내가 자라혼 성장 배경과 그 배경속에서 만들어진 가치관 등... 많은 부분들이 작용한 결과일테다.
듣는것이 말하는것 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내가 이해받으려면 남을 먼저 이해해야한다고도 한다. 다~ 흔해빠진 진부한 얘기다!?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진실은 항상 매우 가까운데 있고 또한 매우 보편적이라는 얘기도 있다. 화려한 언변과 그럴듯한 설정이 이 전제를 감성적으로 동의하게 만들 수는 있겠지만 이 전제의 본질을 이해하는데는 분명 한계가 있는것 같다. 결국 나 스스로 이러한 전제에 대해 오랫동안 그 본질을 따지고 들며 탐미하려는 의지와 여기서 파생되어지는 다양한 관념들을 이해할때 비로소 그 원래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여긴다. 따라서 최근에 내가 하고있는 다양한 고민은 결국 매우 피상적인 이기심에 불과한것이고, 진짜 고민해야 할것은 올곧은 정신으로 나 자신에 대한 냉철한 시각과 더불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도덕적 함량을 키우는 등... 쉽게 말해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SNS가 태동하면서 온갖 언론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회자되고 있어 마치 이것을 모르면 사회에서 도퇴돌것 마냥 떠돌고 있다. 하지만 진짜 SNS가 실 생활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 자리매김하는 시점은 아마 SNS가 더 이상 언론과 미디어에서 떠들만한 이슈꺼리가 되지 않는 그날일테다. 내가 먼저 SNS라는 단어의 족쇄에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SNS라는 말이 사라지기 전 그 단어의 본질인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내가 되어야 한다. "내가 사회와의 더 나은 소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아닌 "나는 사회와 더 나은 소통을 위해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전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런 날이 오기 전에 나는 이 사회와 소통하기 위한 좀 더 똑똑한 방법을 익혀야 할듯 하다. 나를 세상에 드러내는게 쪽팔리다거나 건방지다거나 두렵다거나...2 이 모든것을 초월하고 가급적 나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들어내자. 그리고 굳이 나라는 본질 그 이상으로 포장하려 하지 말자.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할게 아니라 어짜피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니 얼마든지 비판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심지어 아무런 이유없이 또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비난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에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쉬운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분명 올곧은 이성적 의지는 중요한 순간 감성을 다스릴 수 있으리라 믿는다.
요즘 스마트폰이 유행처럼 퍼지더니 이젠 슬슬 보편화되어가는 분위기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가끔 할아버지 할머니도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보고 계시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비록 내가 가진 휴대폰이 피쳐폰이긴 해도 햅틱2라는 녀석인데 효도폰 레벨로 사용하고 있다. 아마 이러한 소통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앞으로 내가 스마트폰을 구입한다 해도 효도폰으로 쓰게 될게 뻔하다. 스마트폰의 중심에는 SNS 즉, 소통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단순히 휴대폰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진화되어 현재에 이른 결과물만은 아니다. 기술은 옳든 그릇되든 인간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진화되어가고 있다. 이 스마트폰은 소통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기술적 경제적 조건과 맞아 떨어졌고 여기에 더해 특정 기업의 강한 임팩트로 마치 화산에서 용암이 솓구치듯 발현하게 된것이다. 즉, 손안의 PC라는 수식어를 넘어선다. 이는 오래전 PDA에서도 사용되어졌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가진 강력하고 다양한 기술들은 대부분 혼자 놀기의 백미를 선물하고 있다기 보다, 소통을 위한 더욱 세련된 방법들을 제공하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에 대한 언론의 기사를 봐도 알 수 있다. 휴대폰에서 오피스 문서를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며 이 놀라운 세상을 경배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모든 관심은 SNS 즉, 소통에 맞춰져 있다. 어디에선가 이런 글귀를 본적이 있다.
스마트폰은 폰이 스마트한게 아니라, 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스마트한게 스마트폰이다.
원래 이 말은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꽤나 똑똑하다~ 그만큼 이 기능을 충분히 사용하기란 쉽지 않다는 얘기였던것 같은데... 내게는 폰을 똑똑하게 사용해야 스마트폰이라 할 수 있다로 들린다. 똑똑하게 사용하고 똑똑하게 행동하고... 지금에 나에게 가장 스마트한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을 초월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내 본연의 의지와 스마트하게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게 아닐까 싶다.
ps1. 원래 8월부터는 이 블로그에 작성하는 글들을 발행하려 했으나, 이노무 소심함이 글 발행을 저해하고 있다.
ps2. 심지어 가까운 지인들에게라도 알리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ps3. 이 글을 지울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그나마 공개로 전환했다.
- Ajax의 경우 Ajax라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게 아니라 웹 서비스 개발 방법중 하나로 자바스크립트와 XML, 그리고 비동기통신을 잘 버무려 과거에는 경험하기 힘들었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본문으로]
- 사실 나를 드러내는 행위와 이러한 관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자기 표현을 이러한 관념과 연관짓고 있다. 이는 경험적 지식에 기반하는데, 많은 정치인들이 많은 기성세대들이 그리고 나 스스로가 말과 행동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누구나 말과 행동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그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그 정도의 문제일텐데,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못했다. 설령 남에게는 인정하더라도 나 자신의 그런 모습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따라서 내 생각을 표현하는 순간 나 스스로의 자기모순을 보게 되고 이러한 과정의 연속은 표현을 억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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